시티 오브 걸스(City of Girls)를 읽고

Story 2023. 3. 22. 20:51

 화자는 올해 스물여섯에, 게임개발자입니다. 아, 책의 화자 말고요. 독후감을 쓰는 화자 말이에요.

 가끔씩 게임 만드는 것에 몰두하고 친구들이랑 메신저로 주야장천 떠들고 있다 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젊음이란 뭘까? 젊음을 실컷 즐기라는 어른들 말이 있긴 한데 나는 그러고 있을까?'

 저는 확실히, 화려하고 관능적인 것들에는 당장 거리가 멉니다. 대외적인 활동을 다닐 때도 깔끔하게만 다니려고 노력하고 가급적 간결하고 추례하게 삽니다. 으레 '개발자'라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그렇듯 저도 그렇습니다. 돈이 조금 생기면 커피를 사 마시거나 무언가 경험하려고 하거나(드물게 몇 번 가는 전시회나 여행 같은 일들을 뜻합니다.) 게임에 몽땅 투자합니다. 아니면 사무실 비로 지출하던가요. 열심히 생존하는 모든 사람들과 동일하게, 저 또한 치열하게 삽니다. 이제 넉넉하지 못하지만요.

 그러다보니 요새 20대가 보내는 유흥을 저는 딱히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요새가 아니라 저희 어머니의 옛 시절 이야기만 들어도, 제 또래들은 과장하지 않고 좋은 싫든 저보다 20배는 많은 술모임을 가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래서 책 초반부를 읽는 내내 '우와 나랑 영 다른 삶인데.'라고 흥미는 가지면서도 그다지 집중하지는 못하며 며칠을 읽지 않기도 했습니다. 책을 고른 이유도 별 다른게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OST(라라랜드의 City of stars)를 닮은 제목이 눈길을 끌었기에 골라 책 자체에도 큰 의미를 가지지 않았어요. 다만, 주인공에게 묘한 몰입은 갔었습니다. 누구나 신나서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나날이란 있으니까요.

 주인공이 인생 한번 있을까 말까한 치명적인 사고를 저지르고 수치심에 몇 년을 보낼 때, 그제야 저는 책에 깊은 몰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와....... 제가 이렇게 사고를 치면 갑자기 그렇게 좋아하던 창작도 관두고 평생을 자원봉사만 다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치명적이고 엄청나고 스케일 있는 류의 것이었으며, 본래 저는 스스로의 실수에 그다지 관대하진 않기에 침을 삼키면서 읽었습니다.

 물론 이런 암흑기가 항상 있으라는 법은 없었습니다. 주인공은 꽤나 운이 좋은 축에 속했고(물론 그게 그가 심리적 고통을 덜 받을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자신만의 즐겁고 치열한 삶을 다시 찾아나갔거든요. 논점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의 사고에 고통받고 저주하는 이도, 안아주고 보호하려는 이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이도 존재합니다. 사고를 저질렀다는 사실도 그들도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자신에게 달렸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자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진 않으니까요. 나머지 인생은 본인이 재단하기 마련이지요.

 주인공은 수많은 형태의 사랑을 했고, 사랑을 하며, 동시에 치열하게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굉장히 멋있고 부러웠습니다. 물론 제 삶에 20대는 이제 중반이며 경험할 좌절과 이겨낼 시련 그리고 창창한 앞날이 한참 남았지만 인생에 있을 모든 후회는 해소하여보이는 나이에 들었을 때, 저 또한 인생을 뒤돌아보고 한치의 거짓 없이 열심히 살았다는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가 인생을 낭비한게 딱히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도되며 뿌듯했습니다. 주인공의 삶을 뭐라하는 것이 아니라, 상단에 젊음 어쩌구 써놨는데 저는 제 방식대로 인생 즐길 거 즐기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책에 몰입하여 순식간에 이야기는 종막으로 향합니다. 책이 완결되었지만 주인공의 삶은 완결되지 않고 계속해서 재단될 것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러가지 깨달음을 주는 의외의 책입니다. 시간 괜찮으시다면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해요.

 

________________________

 독후감을 아주 오랜만에 써봅니다. 때문에 굉장히 두서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거니와, 책 감상문을 쓸 일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랜 두통에서 깨어나듯, 한동안 상념에 잡혀 있었던 저를 이 책이 깨워주었어요. 독후감을 쓸 수밖에 없었죠.

 이 책에 대한 요약은 아니지만 제 감상의 감상문을 셋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자신만의 방법으로 치열하고 가치있는 시간을 보내라. 후회하지 않게."

 "누구에게나 한번 쯤의 기회는 있어야 한다. 기회를 주는 게 내가 아니어도 있겠지만 내가 줄 수 있는 기회라면 한 번은 주자. 나에게는 찰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갈래가 달렸을 수도 있다."

 "...이 책은 공공장소에서 읽으면 안 된다. 나는 비록 전철과 스타벅스에서 읽어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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